한국에서 지배주주가 회사의 이익을 사적으로 유출하는 ‘터널링(tunneling)’ 문제는 수십 년간 반복되어 왔지만, 법은 무력했습니다. (1) 계열회사 간 부당 내부거래, (2) 합병·분할 등 자본거래를 통한 부의 이전, (3) 중복상장을 양산하는 지주회사 제도 등은 모두 소수주주의 희생을 방치하며 시장 신뢰를 무너뜨렸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켜 왔습니다.

1. 부당 내부거래와 일감 몰아주기의 정당성 책임은 이사회에게

계열사간 내부거래, 즉 국제적 용어로는 관계자 거래 (related-party transaction)는, 그 동안은 공정위가 '부당성'을 증명하지 못하면 회사의 책임이 없었지만, 이제는 이사회가 '정당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하지 않으면 책임을 부담하는 사례가 나올 것입니다.

원래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끈도 고쳐 매지 말라'는 것이 우리 속담이고 문화입니다. 형식적 검토와 공시로 점철되었던 관계자간, 계열회사간 거래에 대해 더 철저한 객관적 검증을 하는 문화가 자리잡을 때, 우리 기업의 경쟁력도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2. 자본거래 등 악용 방지 위해 실무 조항 후속 개정 조속히 이루어져야

손쉽게 지배주주의 부를 늘리고 지배력을 강화시켰던 합병, 분할, 증자 등 다양한 계열회사간 자본거래도 주주 충실의무 하에서는 엄격한 심사의 대상이 되겠지만, 효율적 실무를 위해 일반주주 이익 침해를 위해 악용되어 온 수많은 법령의 개정도 빨리 이루어져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상장회사의 합병, 주식교환 등을 시가만으로 할 수 있게 하는 조항, 추상적인 경영상 필요만 있으면 기존 주주를 배제할 수 있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조항, 시가 기준 현금 교부만으로 소수주주를 축출할 수 있게 하는 포괄적 주식교환 제도 등 아주 많습니다.

또한 '중복상장'을 전제로 하는 한국식 지주회사 제도는 원점에서 다시 검토되어야 합니다. 순환출자에 의한 자본 공동화 방지라는 원래의 목적이 잊혀진지는 이미 오래입니다.

인적분할 후 현물출자 방식으로 지주회사에 지분을 모은 지배주주는 지분의 수십배, 많게는 100배 넘게까지 많은 계열회사에 '합법적으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회사와 손자회사에 모두 30%만 지분율을 유지하면 되는 현재의 제도는 역시 '합법적으로' 지배주주의 지분율 희석 없이 끝없는 타인 자본에 의한 확장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본 투입과 지배력의 차이가 커지면 커질 수록 지배주주의 구조적 사익추구 동기는 커집니다. 쉽게 말해, 자기 돈을 거의 내지 않은 사람이 전체의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기업은 물론 경제 전체의 동기부여 구조를 크게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2025년 상법 개정은 한국 자본시장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오랜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의미 있는 첫걸음입니다. 주주 이익 보호와 기업가치 제고라는 대의는 이제 사회적 공감대를 얻었고, 앞으로의 과제는 법문을 실질적 변화로, 나아가 문화로 만드는 것에 있습니다.

 

도입 과정에서는 찬반 양론이 크게 대립했지만, 입법으로 완성된 이상 과장과 왜곡은 멈추고 경영자, 투자자, 정책당국 모두가 긴밀히 협력해 한국 자본시장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투명성과 신뢰를 갖추도록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문화적 변화를 이루길 기대해 봅니다.